일방적 소통과 크리틱의 상관관계 : 오픽시험과 제일제당 면접을 예시로

0. 시작하기 전에 – 헐. 망했다.

이런 미친. 내가 웹진의 첫 글을 담당해야 한다고? 회의 끝에 얻은 것은 거대한 불안감이었다. 원래는 설렘이 절반, 부담감이 남은 절반이었다면 귀갓길에는 약 8할. 불안감이라는 ‘불호’ 덩어리가, 설렘이라는 ‘호’의 영역을 무서운 속도로 먹어 치운 셈이다.

불호는 마치 ‘팩맨’ 게임 속의 고스트와 같다. 부담감, 불안감을 팩맨 속 고스트라는 모습으로 형상화해 보라. 팩맨은 고스트를 만나는 순간 게임 오버다. 귀갓길, 필자의 필드에는 고스트가 너무 많았다. 이 게임, 위험하다고 느꼈다.

팩맨의 메인 이미지. 고스트에게 잡아먹히지 않고 살구색 쿠키를 먹어야 다음 단계가 열린다.

출처는 giphy @officialpacman

파워 쿠키 (큰 점)을 먹으면 고스트가 파란색이 되는데,
그러면 오히려 팩맨이 고스트를 먹을 수 있다. 파워 쿠키가 역전의 열쇠인 셈.

개간호의 주제는 호불호다. 필자는 어제 겪은 일종의 취준생 관문(?)에서 강한 불호를 느꼈고, 이에 따라 미술대학 크리틱에 향수를 느꼈다. 인정하기 싫지만 크리틱에 대한 생각이 불호에서 호로 변하는 순간을 목도한 것. 졸업을 갈망하며 학부생 4년을 버틴 이로서는 충격이었다. “졸업하면 학교가 그리워진다”라는 명제는 학부 시절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 잘 알고 있는 이야기였지만, 그게 나에게도 해당하는 이야기였다니.

개간호로, 그것도 첫 주자로서 이렇게나 뻔한 이야기를 해도 괜찮을까? 하는 두려움이 앞선다. 허나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이라는 마틴 스코세이지 문장을 떠올려 본다. 그 문장이 지금, 나에게 파워 쿠키로 작용했다. 그가 나의 불안감이라는 고스트들을 새파란 고스트로 바꿔 준 셈이다. 파워 쿠키를 먹은 김에 빨리 시작해 보자. 지금부터 나의 ‘크리틱 불호’가 ‘약호’ 정도로 바뀐 경위에 대해 서술하려 한다.

이해를 돕기 위한 필자의 주장에 대한 설명이다. 직접 그렸다.

  1. 세상에 영어 회화를 던지다 – LV. 1 사회 초년생은 일방향 소통과 외로움에 약하다

어제 오픽 시험을 봤다. 중견 이상의 기업들은 이제 토익으로는 만족하지 못한다. 스피킹 점수를 가지지 못하면 대기업에 지원하는 것조차 불가능한 시대다. 영어를 할 줄 안다는 사실만으로는 부족한, 무엇이든 검증을 요하는 사회다.

출처는 https://m.blog.naver.com/skiyejin/222668864347

AI시험관 Ava. AI여서 에이바인 걸까? ㅋㅋ

오픽은 시험관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 시험이다. ‘나’와 Ava라는 이름의 캐릭터 한 명 간의 소통이 전부인 간단한 시험이다. 수많은 ‘나’ 들이 컴퓨터 앞에 앉으면 Ava는 40분간 랜덤한 질문을 던진다. ‘나’는 영어로 된 대답을 녹음한다. 녹음을 마치면 바로 다음 질문, 또다시 녹음. 넥스트 버튼을 누르면 또다시 질문… 그런 행위를 열다섯 번 반복하면 시험이 끝난다.

어떻게든 적절한 표현을 사용하기 위해 ‘내’가 몸부림친 흔적들은 (예를 들면, nice나 good보다는 fascinating 혹은 memorable 같은 표현이 더 좋은 점수를 받는다고 한다. 따라서 외워 온 고급 단어를 나의 허접한 답변에 집어넣어야 하고, 이는 꽤 순발력을 요한다.) 녹음파일이 되어 바다 건너 원어민 채점관에게 보내진다. 그들의 업무는 아마, 허접한 ‘나’ 들의 답변을 듣고 타당한 등급을 매기는 것이겠다.

 Ava는 ‘나’에게 질문하지만 ‘나’는 그에게 질문할 수 없다. 질문해도 돌아오는 대답은 없다. 채점관이 속으로 내 질문에 대한 대답을 떠올릴 수는 있다. 허나 그것은, 뇌리를 맴돌다 사라질 뿐 내게 돌아올 수 없다. 이 지독한 일방향 소통 공간에서 필자가 느낀 것은 거대한 외로움, 즉 거대한 불호였다. 필드의 고스트들이 너무 빠르게 움직인다. 파워 쿠키는 남아있지 않다. 긴박한 상태, 이는 곧 미대 입시의 추억을 상기시켰다.

출처는 https://www.yna.co.kr/view/PYH20151007117800060

킨텍스에서 치러진 2015년 한양대 응용미술교육학과 입시장의 모습. 우리는 모두 저 중의 한 사람이었다.

아마도 망망대해를 떠다니는 표류자의 기분이 이런 기분일까? 모두가 동시에 같은 곳에서 같은 주제로 그림을 그리고 있다. 허나 그곳에 나와 뜻을 함께하는 이는 없다. 오픽 시험도 마찬가지다. 모두가 동시에 헤드폰을 쓰고 말하고 있어서, 헤드폰 밖으로 타인들이 각자의 대답을 꾸며대는 소리가 마치 모깃소리 같다고 느껴진다. 새벽즈음, 모기가 귓전에서 웽웽댈 때의 바로 그 느낌. 미대 입시 시험장과 오픽 시험장, 이곳은 둘 다 각자의 외로움이 교차하는 지점이었다. 

세상에 영어 회화를 내던지니,미대 입시의 외로움이 떠올랐다. 이는 기이하게도 미술대학에 대한 디아스포라를 내게 남겼다.

  1. 오픽이 내게 남긴 것 – 미술대학에 대한 디아스포라 에 대한 변명 (?)

회화과 졸업생으로서, 세상에 무언가를 내던지는 행위를 피할 수 없다는 것 정도는 잘 알고 있다. 매 학기 최소 두 번씩 진행된 크리틱이 알려주었다. 이는 미대생들에게 만성 스트레스의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사람에 따라 변비, 설사, 탈모와 뾰루지를 동반한다. (필자의 경우, 크리틱 일주일 전부터 얼굴에 뾰루지가 올라오곤 했다. 꽤나 ‘거대 고스트 행위’다.)

대체로 이런 느낌이다.

미대를 경험해 보지 못한 이들을 위해 크리틱의 과정을 설명하자면, 우선 교실 청소로 시작된다. 미대생들은 대체로 피곤하고 게으르다 보니 크리틱 당일 아침에야 청소가 이루어진다. 뼈 빠지게 청소하고, 각자의 이젤을 벽 따라 전시하여 모두가 작업물을 볼 수 있게 만든다. 그리고 교수님 입장. 짧은 인사와 함께 크리틱을 빙자한 비난 쇼가 시작된다.

한명 한명을 상대로 교수님께서 작업물에 대한 장단점을 이야기한다. 칭찬 두어 마디를 필두로 대체로 단점이나 아쉬운 점이 줄줄 쏟아지는데, 작업에 대한 비판, 평소 나의 작업 태도에 대한 비판, 평소 나의 출석 이슈에 대한 비판도 이때 한 번에 몰아 말씀하신다. 대체로 체력이 적은 미대생들의 장수를 기원하는  의식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참고로, 이때 언급하시는 것들은 주로 그간 나에게 말씀하신 적 없는 종류의 단점이다. 크리틱까지 8주간 나에게 그걸 말씀하실 기회가 분명 있으셨을 텐데, 왜 크리틱 상황까지 오고 나서야 말씀하시는 걸까? 작업은 이미 완성인데. 하하. 아마도 내가 감히 예상 못 할 의도가 숨어있을 것이다.

 출처는 무한도전 선택 2014.

민주주의는 아니다. 하지만 욕(?)의 자유는 있는 곳이다.

가끔은 크리틱 과정에 학생들을 참여시키는 교수자들도 존재한다. 이 경우, 대체로 친한 학우에게는 좋은 평가 위주로 남긴다. 생각해 보라. 친한 친구가 8주를 쏟아 열심히 작품을 완성했는데, 거기에 비판을 던지는 일은 생각보다 힘들다. 이러한 상황이 발생할 경우 교수자는 특단의 조치를 취하기도 하는데, 이름하야 ‘비판만 허용’ 스킬이다. 평가대에 선 자의 작업을, 모두가 최소 한 마디씩 ‘비판만’ 해야 하는 상황이다. 작업의 발전을 위해서 비판은 필수적이지만, 모두가 이를 기피하기에 교수 재량으로 비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강제하는 것. 여하간 이런 게 크리틱의 내용이고, 종류다.

이리 서술해 두니, 마치 크리틱 또한 지옥과 같은 일방적 소통으로 보이는데 그렇지 않다. 서론이 길다 보니 이런 문제가 발생했다. 필자는 지금 크리틱이 ‘개큰 고스트’에서 ‘미니 쿠키’ 로 변모했다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 이 챕터를 열었다. 적어도 거기에 존재했던 것은 ‘나름대로 쌍방향 소통’이었으니까. (나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교수자가 학생의 작업을 비판하면, 학생은 거기에 상응하는 대답을 할 권리가 있다. 자기 작품을 지켜내고 변호하는 것은 작가로서 취할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이기에 말대답 까방권을 얻는 셈. (가끔 들어온 비판에 대한 해명을 금지하는 교수자도 있지만, 여기에는 내가 예상할 수 없는 까닭이 있을 터이니 논외로 둔다. 여하간 이런 면에서 작가와 작업물의 관계는 마치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처럼 보이기도 한다. 자식이 욕먹는 상황에서 가만히 있을 부모는 세상에 많지 않다.) 

위 문단으로 나의 심정이 조금은 설명되었기를 바란다. 크리틱이 진정 ‘호’의 영역에 문제 없이 안착했는지는 불확실하다. 졸업 당한 입장이기에 느끼는 디아스포라가, 오픽이라는 크나큰 ‘불호’가 크리틱을 억지로 ‘호’의 영역으로 끌어당겼다는 건 확실하다.

  1. 자연재해급 무관심 – 세상에는 더 큰 팩맨도 많다 

회화과의 크리틱도 완벽한 쌍방향 소통은 아니었다. 그곳에서의 소통은 나름대로 쌍방향 소통’에 그쳤지만, 적어도 모두가 필자(와 필자의 작업물)에게 최소한의 관심 정도는 있었다. 상상을 해보라. 8주간 모두가 한 작업실에서 작업했다. 이때 자연스레 학우의 작업을 보고 ‘저기 그린 저 오브제의 의도는 뭐지? 저건 왜 저렇게 했지?’ 같은 의문이 생기기 마련이고, 크리틱은 이러한 의문을 해결하기에 좋은 자리다. 따라서, 크리틱은 일종의 ‘작업 질문 받습니다’ 같은 소통의 장으로 기능하기도 했었다. (대체로 한두 명의 좀 활발하거나 전공에 관심이 지대한 이들을 제외하면 교수님의 원맨쇼이긴 하다. 허나, 우선 그런 사항은 차치하고 이야기하고 싶다.)

그러나 사회 초년생으로서 한 모든 경험에는 그런 관심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필자와 대화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질문을 던지는 AI Ava, 그 외 몇 가지 면접 경험들은 나로 하여금 ‘자연재해급 무관심’이라는 단어(?)를 만들어내게 했다. 이번 초여름, 첫 면접으로 제일제당 인재원에 방문했다. 첫 면접치고는 꽤 이름있는 회사였다. 그간 알바 경험을 통해 ‘서류보다는 면접에 강한 편’이라고 자부했기에, 자신있게 입장했다. 허나 면접관의 표정을 보는 순간, 필자는 얼어붙고 말았다. 대체 무슨 답변을 하다 왔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면접관들의 표정만 뇌리에 박혀 있다.

그들은 ‘필수 교양 수업을 듣는 대학생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정말 관심 없는 이야기를 어쩔 수 없이 듣는 사람 특유의 내려간 입꼬리, 집에 가고 싶어 보이며 일말의 흥미조차 없는 네 개의 눈. 그 표정이 공허하게 나를 쫓는다. (절대 그들의 외모 평가가 아니다.) 나를 보고 있지만 나를 보고 있지 않다. 태어난 이래로 처음 받아보는, 하해와도 같은 무관심. 아주 깊고 깊어서 빠져나올 방도를 헤아릴 수 없는, 자연재해와도 같은 무관심이었다.

귀멸의 칼날 21권 181화. 직접 이북소장 후 캡쳐했다.

자연재해급이다. 마치 like 귀칼의 “그 분”

  1. 그 차이는 무엇이더냐?

이러나저러나 내 작업물이, 내 삶의 궤적이 평가받는 것은 매한가지다. 똑같이 머리 빠지고 여드름 난다. 그런데도 나는 크리틱의 손을 들었다. 이 상황에 대해 적확한 까닭을 찾을 수 없었고, 따라서 초안을 마무리하지 못했다. 며칠 내리 생각했고, 함께하는 동료들의 의견을 들었다. 그리고 지금, 드디어 해답을 찾아 글을 마무리할 수 있게 되었다.

예체능 계열, 특히 미술은 작가의 주관이 크게 반영되는 영역이다. 따라서 크리틱 상황의 청중과 평가자는, 나의 작업뿐만 아니라 ‘나’ 에도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2번 항목에서, 교수자들은 ‘나의 작업’에 더해, ‘나’의 작업 태도까지 비판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이들은 ‘나’를 더 좋은 어딘가로 이끌려는 의지를 가진 채 평가하고 있었다. (대체로 학생들의 산출물이 더 좋은 방향으로 향하기를 바라는 의지가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크리틱을 통해 받은 성적에 의문이 든다면 정중히 여쭈어보는 것도 가능하다.

출처는 티스토리 오픽만수르 님.

오픽의 백그라운드 서베이. ‘음악 감상하기’를 누르면 높은 확률로 음악 감상에 관한 질문이 나오는 시험이다.

하지만 오픽은, 면접은 그렇지 않았다. 오픽은 ‘나’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관심이 없다. ‘나’의 흥미와 취미를 묻는 사전 설문이 시험 전에 선행되긴 하지만, 이는 ‘나’에 대한 본질적인 궁금증이 아니다. 수험자가 원하는 질문을 고르는 과정일 뿐이다. 면접은 교수님처럼 ‘나’를 이끌지 않는다. 타인으로서 ‘나’를 평가하고, ‘나’가 살아온 기록이 기업에 적합한지를 판별할 뿐이다. 탈락에 의문이 생기더라도 이에 대해 질문할 수 없다.

결국, 필자가 감지한 크리틱의 ‘나름대로 쌍방향 소통’과 ‘그나마 나에게 관심 있음’이라는 특징은, 학교가 나를 더 좋은 곳으로 이끌기 위한 목적을 가진 존재였기에 느낄 수 있는 따듯함이었던 것이다. 실로, 학교는 LV. 1 사회 초년생이라는 화초를 위한 쿠키 파티였음을 통감한다.

출처는 giphy @officialpacman

미대에서 쿠키를 먹고 자라는 우리의 모습.

  1. 거대 고스트 앞에서의 우리

팩맨은 고스트를 마주치면 죽는다. 하지만 파워 쿠키를 먹으면 고스트를 역으로 잡아먹을 수도 있다. 이를 이용해 일부러 고스트가 가까이 오도록 유도한 뒤, 파워 쿠키를 먹고 바로 고스트를 잡아먹는 플레이도 가능하다. 마치 우리의 모습과도 닮아있지 않은가? 쿠키를 즐기되, 파워 쿠키가 있다면 불호라는 고스트를 적절히 다룰 수도 있으니까.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처한 상황에 대해 우리는 아는 바가 없다. 그러나, 당신 또한 필자가 줄줄 적어놓은 ‘팩맨 됨 상태’를 겪었거나, 겪고 있거나, 겪게 될 확률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다. LV. 1 사회 초년생으로서, 같은 팩맨으로서 당신의 필드에 보다 많은 파워 쿠키가 존재하길 바란다. 고스트가 아무리 많더라도, 당신이 즐기는 이 게임이 쉽게 끝나지 않을 수 있도록. 다음 스테이지로 넘어가는 것이 조금 더 쉬운 일이 되도록. 우리의 게임은 계속되어야 하니까.

체인소맨 4권 29화. 직접 이북소장 후 캡쳐했다.

심각한 생각 해봤자 뭐 해! 얼른 작업하러 가자~! 급 엔딩

  1. 여담

필자가 글을 마무리할 수 있게 된 데에는 함께하는 동료들의 도움이 크다. 이들은 피드백 과정에서 몇 가지 흥미로운 댓글을 남겼는데, 독자들 또한 한 번쯤 생각해 볼만한 재미있는 포인트라고 생각되어 공유하고자 한다 : “관심은 유료 서비스고 면접에는 등록금이 없어서 무관심의 재해가 생긴 걸까나.” 필자의 경험을 금전적인 관점에서 날카롭게 관통하는 이야기라고 느꼈다. 또 어떤 필진은 면접과 크리틱의 차이를 논하기도 했다. 그는 “면접은 어찌 보면 크리틱과 같지만, 권한과 위계에서 시발점이 다르죠. 대개 면접자들은 우리를 육성해야만 하는 의무를 지닌 교육자가 아닐 테니까요.” 이 또한 필자가 생각하지 못했던 ‘면접자들의 입장’에 대해 논한다. 필자 또한, 팩맨에 짓눌려 면접관들에게 무관심했던 게 아닐까? 최종적으로, 최근 미술대학에서 행해지는 크리틱이 정말로 크리틱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 필진도 존재했다.

모두 미술대학 구성원으로서, 우리의 실존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이들이다. 그들의 이야기도 곧 올라올 터이니, 기대하며 지켜봐 주길 바란다.

신소영

rubysnow@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