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방적 소통과 크리틱의 상관관계 : 오픽시험과 제일제당 면접을 예시로]에 대한 필진 대화 아카이브

2025/09/02-09/06 동안 이루어진 대화 중 일부

1. 좋고 싶음의 차이

      중한 : 옳고 그름과 달리 좋고 싫음은 흔히 소위 개인 취향이라는 명목하에 선택의 기로에서 특정 답을 설득해야만 하는 당위성이 옅은 것 같아요. 다시 말해서 무언가를 선택할 때 일방적인 설득이 아닌 흥미로운 권유가 되어야 한다는 거죠. 그런 부분에서 어쩌면 작성자분의 지난 단락에서 언급했던 면접과 크리틱 간의 차이점으로 결부 지을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2. 크리틱과 면접

      혜주 : 요새 미술대학에서 진행되는 크리틱이 정말 크리틱으로 작용하는지에 대해 생각해 봐도 좋을 거 같아요. 제 경험상 특히 대부분의 크리틱은 한두 명의 좀 활발하거나 미술에 관심이 많은 학생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입을 다물고 있고, 대부분은 교수님의 원맨쇼였기 때문이에요. 그러한 일련의 과정이 개인적으로 제대로 된 크리틱이나 동료 작가들끼리의 비평의 장이 아니었다고 느껴요. 하지만 크리틱에서 내가 이야기하는 것은 내 노력의 결과물(혹은 자기 표현의 수단)이기 때문에 그나마 나았던 것인지, 면접이나 오픽에서 내가 대답하는 것은 왜 쌍방향 소통으로 느껴지지 않았는지(특히 면접은 나라는 사람에 대한 질의응답 시간임에도 불구하고)에 대해서 더 생각보고 싶어요.

      ㄴ중한 : 크리틱 시간이 있다는 것이 예체능 계열, 특히 미술 분야에서 갖는 양날의 검인 것 같아요. 작업 분위기가 좋은 환경이라면 열린 방식의 크리틱은 첨예한 질문들이 난무할 테지만, 무관심 속에 있다면 이보다 헛된 시간이 아닐 수가 없죠. 그러나 면접은 어찌 보면 크리틱 같지만 권한과 위계에서 시발점이 다르죠. 대개 면접자들은 우리를 육성해야만 하는 의무를 지닌 교육자가 아닐 테니까요. 공감하면서 들었습니다. 저 역시도 이러한 부분에서 보충된 이야기를 더 듣고 싶습니다.

      ㄴ현 : 관심은 유료 서비스고 면접에는 등록금이 없어서 무관심의 재해가 생긴 걸까나. 갑자기 이런 의문이 들었습니다. 크리틱이 제일 냉정한 비판인 줄 알았던 우리가 교문 밖에서 더 황량한 세상을 경험하는 흐름이 좋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