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9/06-09/13 동안 이루어진 대화 중 일부
1. 냉소는 쉽고, 사랑은 어렵다.
혜주 – 냉소는 쉽고, 사랑은 어렵다는 말을 정말 좋아해요. 중한씨의 글을 며칠 내내 보면서 가장 많이 떠오른 말이었습니다. 챕터 제목에도 호불호는 삶의 애정이라고 나와있 듯이 중한씨가 이야기하는 호불호, 특히 시간을 들여 깊게 파고드는 호의 영역이 많은 사람들은 어쩌면 사랑과 감사가 많은 사람들이 아닐까 싶어요. 무언가를 깊게 좋아하고 그걸 계속 알아보고 사랑하는 힘은 사실 그걸 왜 좋아해 ? 왜 그렇게까지 빠져있어 ?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데 ? 라는 많은 냉소적인 태도를 견뎌내야 하죠. 그래서 어려운거 잖아요. 이런 어려움을 이겨낸 태도가 모여 곧 중한씨가 글에서 말한 것처럼 세상을 바라보는 해상도 또한 높아지는 것이라고 느꼈어요. 지금 2025년을 살아가는 건 내가 사랑하는, 쓸모없고 효용없는 것들에 집중하는 것보다 실질적으로 나에게 도움이 되는 부동산이나 주식, 제2외국어와 같은 것에 집중하는 게 더 나을 수도 있죠. 하지만 그럼에도 호불호, 내 취미, 내 취향, 내 관심사 이런 것들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는 것이 곧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져요. 사랑이 많은 사람은 강한 사람이죠. 제가 처음 중한씨 글을 읽었을 때 좋다고 느낀 것도 은연중에 그런 사랑이 느껴졌기 때문인 것 같네요. 중한씨가 가지고 있는 사랑이 냉소와 혐오에 지지 않길 바랄게요. 앞으로 웹진 글에서 계속해서 그런 사랑이 담긴 글을 읽을 수 있을 거 같아 기대가 됩니다.
ㄴ중한 – 정말 공감합니다. 취향도 없고 내 삶과 주변에도 관심이 없었다면 모두의 도움이 있었더라도 글을 쓰기가 쉽지 않았을 겁니다. 적어도 저는 성경을 쓰는 것도 해설서를 쓰는 것도 아니니까요. 부족하고 서툴지라도 삶의 의미를 조금이나마 더 새롭게 새겨보고 냉소에 지지 않기 위해서 글을 씁니다. 힘들다면 힘든 세상이지만 언제나 각자 만의 가슴 뛰는 일들이 있으니까요 하하. 다만 그것들을 ‘그냥’이라고만 한다면 알 수 없는 것들이 많으니까요. 그래서인지 이것저것 설득력을 갖기 위해서 그 근원적인 출처와 근거들을 갖고 오려 노력했던 것 같기도 합니다. 아무쪼록 좋게 봐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2. 몰입과 외면
국현 – 시간의 문제이지만 단순한 양이 아니라 몰입과 외면의 문제라는 시점이 흥미롭네요 불호의 경우는 시간을 들이고는 있지만 자의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 독특한 접근 같아요
3. 현명함?
소영 – 현명함이라는 워딩이 어쩐지 마음에 들지 않아서 왜 그럴까 생각해 봤습니다. ‘세상이 요구하는 기준에서의’ 현명한 선택이 떠올라서 그런 것 같아요.
후반부에서 “충만하고 행복한 삶의 전제는 (중략) 가치판단에 있다.” 고 말씀하시는 걸로 보아, 세속적 가치(?)로서의 현명함을 의도하고 작성하신 것 같지는 않아요. 만약 제가 맞게 판단한 것이라면, 만족스러움? 같은 워딩으로 바꿔보는 것도 추천드려요.
ㄴ혜주 – 사실 저도 같은 생각이었어요. 고려해 보시는 게 좋을거 같타요. 뭔가 ,, 현명하다 ,, 어질고 현명하고 조신한 ,, 뭐 약간 이런 느낌으로 다가와서 그런가? 왜 현명함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거부감이 들까요
4. 미야자와 겐지
소영 – 미야자와 겐지의 ‘비에도 지지 않고’ 라는 시가 떠오르는 부분이었어요. 그 시를 읽었을 때, 이렇게 원하는 삶의 방향성(?)이 확실한 사람은 일단 삶에 대한 경험치가 엄청난 사람일 것 같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비에도 지지 않고 – 미야자와 겐지
비에도 지지 않고 바람에도 지지 않고
눈에도 여름 더위에도 지지 않는
튼튼한 몸으로 욕심은 없이
결코 화내지 않으며 늘 조용히 웃고
하루에 현미 네 홉과 된장과 채소를 조금 먹고
모든 일에 자기 잇속을 따지지 않고
잘 보고 듣고 알고 그래서 잊지 않고
들판 소나무 숲 그늘 아래 작은 초가집에 살고
동쪽에 아픈 아이 있으면 가서 돌보아 주고
서쪽에 지친 어머니 있으면 가서 볏단 지어 날라 주고
남쪽에 죽어가는 사람 있으면 가서 두려워하지 말라 말하고
북쪽에 싸움이나 소송이 있으면 별거 아니니까 그만두라 말하고
가뭄 들면 눈물 흘리고 냉해 든 여름이면 허둥대며 걷고
모두에게 멍청이라고 불리는
칭찬도 받지 않고 미움도 받지 않는
그러한 사람이
나는 되고 싶다
5. 좋아함과 싫어함의 차이1
소영 -이 부분은 꽤 흥미로워요. 저는 좋아함의 반대는 싫어함이 아니라 무관심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싫어하는 것에도 시간을 종종 들여요. 내가 그것을 왜 싫어하는지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강한 불호를 느끼는 순간 무조건 그것에 대해 리서치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홍상수 영화를 봤는데 싫었다 -> 왜 싫은지 정확히 알고 싶다 -> 직접 홍상수의 다른 영화를 더 봅니다. 홍상수의 생애도 리서치합니다. 이 자식 왜 이러나 파악하는 데 시간을 들입니다. 아마 중한님께서 말씀하신 ‘무엇을 외면했는지에 대한 축적’ 을 인지하는 과정을 제가 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반면, 정말 개큰불호, 이런 건 세상에서 사라져야 한다, 그냥 없어지시길~ 같은 감정을 느끼는 영역에는 관심조차 주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숏폼이라는 형식 자체를 싫어하기 때문에, 절대 안 봐요. 아무리 친구들이 웃기다고 보내도 무시합니다. 저와 정치 성향이 아예 상반되는 이의 말은 그냥 무시하기도 하고요.
따라서 저는 좋아함의 반대는 무관심이라고 생각했어요. 흥미롭습니다.
ㄴ중한 – 동의합니다. 저도 그러한 맥락에서 이전 글에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는 느낌으로 얘기를 남겼었으나, 그땐 또 너무 그 부분을 근거 없이 서술해서 이해하기도 어려웠을뿐더러 설득력이 없었던 것 같네요. 아마 종합적으로 고려해 보면 크게 싫어하는 것엔 2가지 측면이 있는 것 같아요. 정말 관심조차 주지 않거나, 외면하려 애써보거나요. 둘 다 고려해서 작성해 볼 수 있다면 작성해도 좋을 것 같군요.
6. 좋아함과 싫어함의 차이2
혜주 – 좋고 싫음의 기준이 온전히 나에게만 있는가? 는 조금 더 생각해 볼 지점이 아닐까 싶기도 해요. 저희가 속해있는 사회나 저희에게 노출된 미디어, 혹은 주변의 평가에 의해서 무의식 속에 이걸 좋아해야 해 혹은 이걸 싫어해야 해라고 강요받은 것들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요. 예를 들어서 남자는 치마를 입으면 안 된다는 사회의 시선 속에서 치마를 좋아하는 남자여도 내가 치마를 좋아하는지 인지하지 못하고 있을 수도 있고, 현대미술에서 중요한 작가이니 이 사람의 작품은 위대하다고 평가받기 때문에 위대한 거라니까 나도 그렇게 생각해야 해 라고 생각할 수도 있죠. 중한씨의 요지를 부정하고 틀렸다고 말하고 싶은 것도 아니고 이 부분을 수정하라는 의미도 아니지만 저처럼 바라보는 시각도 분명히 존재할 테니 이 부분에 대해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거 같아요 !
7. 숏폼의 시대
혜주 – 회의했을 때 숏폼이나 여러 이야기를 하면서 시간을 들인다는 것에 중한씨가 요새 많이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느꼈거든요. 동시에 우리 또래의 세대가 얼마나 시간을 들이고 무언가에 몰두하는 것에 결핍되어 있는지도 이야기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어요. 요즘은 숏폼과 릴스와 단편화된 것들의 시대죠. 책도 영화도 대부분의 것들을 원본을 보지 않고 짧고 요약된 것들로 소비하니까요. 이런 뭔가 자세한 예시가 포함되어서 요즘 시대가 시간을 들인다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고, 시간을 들인다는 행위가 얼마나 필요한지? 중한씨가 바라보기에 어떻게 느끼는지 뭐 이런 이야기가 더 나오면 좋을 거 같아요.
추가적으로 그런 시간을 들여 무언가를 이해하고 개인의 시각으로 해석하지 않고 뭔가를 보면 바로 그것에 대한 해석을 찾아보고 남들의 리뷰나 평가에 좌지우지되는 걸 보면서 사실 단순히 시간을 들이는 행위보다 시간을 어떻게 들이는지가 더 중요한 거 같기도 해요.
8. 파고드는 것
혜주 – 중한씨가 말하는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도처를 바라보는 사람도 그러지 않는 사람도 모두 파고들거나 외면하기를 선택하죠. 근데 중한씨가 말하는 사람들은 외면하는 것보다 파고드는 것을 더 자주 선택하는 사람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