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9/17-09/20 동안 이루어진 대화 중 일부
1. 작품을 끄집어내 노출하는 것
“ 방에서 작품을 끄집어내 노출해야 한다. 이때 주어지는 반응은 예측 불가이다. 어떠한 가림막도 없이 작품은 타인에 의해 품평 된다. 내밀한 곳에 있던 소중한 것을 타인에게 공개적으로 평가받는 것은 쉽지 않다. 하물며 그것이 말 한마디라도 어려운데. 몇 달을 쏟은 작품이라면? “
ㄴ소영 : 이 부분에 강렬하게 공감합니다. 저의 글에서 언급했던 ‘세상에 무언가를 던지는 일’에 대한 두려움이 바로 이런 내용이었던 것 같아요.
시험은 나의 점수가 비밀이죠. 내가 떠벌리고 다니거나, 70년대처럼 벽에 모두의 점수가 붙지 않는 이상요. 하지만 예술을 전공으로 삼은 저희는 (‘예술을 하는’ 과는 다르다고 생각해요) 노출됨이라는 과정을 통해 누군가에게 평가받고, 인정받아야 수익을 창출하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이런 수익 창출의 과정이 어떤 면에서는 연예인과도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스스로 대중 앞에 서는 연예인과는 다르게, 작업을 통해 대중 앞에 서고 있으니… 조금 샤이한 연예인이랄까요……
2. 좋아하는 것과 분석하는 것
중한 : 우리 미술 전공자들은 모두 ‘문화 생산자’로서 문화와 의미 생산에 기여하고 또 재생산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궤변은 아닐, 내 스스로 괴짜가 된 건 아닌지 끊임없이 의심하고 불안해하죠. 저는 이 불안이 분명 좋은 문화생산자(작가, 큐레이터, 전공 관련 직종)로서 성장하고자 하는 열망에서 기인된 것이지 아닐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그러나 그만큼 내가 가장 좋아했던 것이 나를 가장 짓누르는 것이 되는 것만큼 마음 아픈 일도 없을 것 같아요.
흔히 돋보기를 들고 본다고들 하죠. 내가 왜 이토록 분석하는지에 대해서 곰곰히 생각해 보면, 프로이트의 말을 빌려 이드(id)의 영역보다는 자아(ego)의 영역에서 비롯되는 것이죠. 저는 좋은 작품을 보면 ’나도 저렇게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듭니다. 거기서부터 머리가 참 아파지는 길이지만요.
3. 감상의 변화
혜주 : 근데 사실 이런 감상의 변화가 저는 자연스럽고 오히려 긍정적이라고 여겨져요. 감각으로만, 맥락 없이 작품을 해석하는 건 사실 동시대 미술과는 안어울리는 작품 해석 방식이지 않나요 ? 거대한 맥락 속에, 작가의 환경 속에, 작품이 담고 있는 내러티브 속에서 작품을 해석할 때 더 깊이 있는 해석과 분석이 가능해지는 거 같아요. 취미였던 것이 전공이 되면서, 더 이상 그 가벼움을 유지할 수 없고 깊이가 생기는 건 당연하죠. 거기다가 단순히 저희가 이론을 전공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을 제작하고 있고, 무엇보다 제도권에 편입하고 싶어 하기 때문에 오히려 이런 과정은 내 작업을 더 밀도 있게 해주는 좋은 과정이라고 여겨져요. 원래 일은 진지하죠. 어떤 분야의 프로가 되기 위해서는 진지해야 하고 그만한 프로다움을 보여야 하잖아요. 그 프로다움을 훈련하는 과정은 당연히 사랑과 애정만으로는 버틸 수 없고요.
ㄴ 현 : 저도 학습의 관점이나 이해의 폭이 넓어지는 것으로 봤을 때는 긍정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이성적으로 보는 부분이 늘어나면서 전처럼 예술을 시각이나 감성으로 파악하는 부분이 퇴화한 기분이 든달까요. 작품의 감상에는 여러 가지 경로가 있는데 한쪽으로만 사고하게 된다는 말이었어요. 프로다움을 훈련하는 과정도 필요하지만 관람자로서의 즐거움이 조금 줄어들었달까요.
ㄴ 혜주 : 맞아요 너무 한쪽으로만 사고하게 되는 건 아쉬운 부분이죠. 그 균형을 잘 잡는 게 중요한 거 같아요. 어떤 작품은 여전히 좋고, 어떤 작품은 분석적으로 바라보는 그런 과정. 저는 현씨가 너무 아 프로다워야 해 !!! 작업 너무 좋아야 해 !!!! 하는 부담감을 많이 느껴서 그 부담감의 압박 속에서 즐거움을 못 느끼게 된 거 아닐까 싶기도 해요. 저 같은 경우에는 여전히 전시를 보면 즐겁기도 하고 분석적으로 바라보기도 하는데, 먼저 감각으로만 받아들이고, 그 이후에 내가 이 작업에서 가져갈 수 있는 게 뭘까. 이런 부분을 내 작업에도 쓸 수 있겠다. 하고 바라보는 거 같아요. 그런 사랑(즐거움)과 분석은 모두 필요하지만 그 기준을 잘 잡는 게 사실은 제일 어려운 일이고 그게 어렵기 때문에 힘들어지는 거 아닐까 ,, 라는 생각을 합니다.
4. 완성에 대해
중한 : 우리가 광적인 집착과 강박을 갖는 이유는 궁극적인 완벽이 해소가 되지 않아서입니다. 물론 전공자 누구나 완벽주의자는 아닐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정답과 완성이라는 개념이 점차 다분화되고 모호해져 버린 동시대 미술일수록, 저마다의 특정 목표치가 다르기에 더욱 명료하게 접근하기 어려운 것 같고, 또 각 매체와 목표치에 부합해서 예술가들에게 요구되는 능력도 많아졌기 때문에 각종 강박이나 집착이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늘어난 것이 아닌가 합니다.
5. 예술과 노동
혜주 : 예술이 좋아해야 업으로 삼을 수 있는 분야인가요 ? 정말 ? 그 좋아해야 업으로 삼을 수 있다는 말은 약간 그렇게 좋아하게 태어난 사람이 아니고서는 업으로 삼을 수 없다는 말처럼 들리고 이는 곧 과거의 미술이 이야기하던 작가 혹은 예술가는 하늘이 정해준다와 같은 맥락으로 들리기도 해요.(물론 제가 너무 과하게 곡해한 것일 수도 있죠) 동시대 미술은 오히려 그런 천재성(사실 저는 좋아하는 마음도 재능이라고 생각해요), 엘리트성, 고귀함 이러한 것들을 해체하고 있는데. 예술이라고 특별히 숭고한 것도 아니고 충분히 적당히 해낼 만한 기술이 있다면 밥벌이가 될 수 있죠. 직업으로 충분히 고려해 볼 가치가 있지 않나요? 저희는 동시대 미술을 지향하고 작업을 하고 있다지만, 영상 촬영이나 디자인 혹은 건축과 같은 기타 등등의 커머셜한 예술 분야도 정말 많잖아요. 좋아하지 않으면 업으로 삼을 수 없다는 말은 예술을 오히려 배타적으로 만드는 발언일 수도 있는 거 같아요.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 꼭 부정적으로만 해석되는 건 아닌데 말이죠. 예술을 하고 작업을 하는 사람들도 그걸로 돈 벌어먹고, 밥 벌어먹고 사는 이상 그건 삶의 수많은 ‘노동’ 중 하나 아닌가요 ? 다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해요.
ㄴ 현 : 음 이게 엘리트주의로 들릴 수도 있겠네요. 먼가 예술 영역의 봉급이 노동에 비해 적다는 생각이 들어서 자기만족이나 동기가 없으면 힘들 것 같다는 맥락이었는데 이 피드백 보면서 신중하게 다시 생각해 보고 있습니다,,떙큐,,,
ㄴ 혜주 : 오히려 이렇게 현씨의 댓글을 보니까 납득이 돼요. 예술 영역이 열정페이에 가까운 낮은 임금으로 진행되고 있고 그 과정도 워라밸은 완전 무시한 것처럼 돌아가죠, 그렇기 때문에 예술에 대한 애정이나 자기만족, 성취를 느끼지 못한다면 지속하기 힘들 것 같다는 이야기는 정말 정말 동의하고 있어요. 오히려 이런 이야기를 더 구체적으로 넣는 건 어떨까요 ?
6. 완벽한 가치
중한 : 완벽한 가치란 존재할까요?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없기 때문에 비로소 사랑하면서 소유하고도 싶고 그리워도 하고 다시금 돌아가기도 하는 것이지 않을까 싶어요. 한국 대중가요 역사에 가장 짙은 획을 그었던 고 유재하씨의 살아생전 앨범들을 더 들을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지 미련이 남는 것처럼 말이죠. 모든 걸 다 만족하고 가질 수 있었다면, 오히려 공허함을 느꼈을지도 모릅니다. 근본적으로 예술은 언제나 우리의 삶과 관련되어 있기에 가치 있고, 또 우리의 삶은 언제나 저마다의 크고 작은 부족함이 있어 왔으니까요. 조금은 벅찬 주제로 힘겹게 끌고 오려 했던 저의 저번 글과 다르게, 소영님과 마찬가지로 개인적인 서사를 같은 공감 있게 풀어낸 것 같아서 느낀 점도 많았고, 전공 학우로써 고개를 끄덕이며 들었습니다. 다만 확실한 것은 사랑하지도 않았으면 이런 고민조차 하지 않았을 겁니다. 시간을 거스를 순 없어도, 시간에 저항하면서 사랑하는 것들을 남겨 가봅시다. 우리 모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