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쾌한 골짜기, 호불호의 본질

호불호란 무엇인가, 좋아하는 것과 안 좋아하는 것. 동일한 문화권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에게 같은 것을 보여줘도 서로 다른 감정을 가지는 것. 누구는 이것을 취향이라 말하고 누구는 이것을 선택이라 하지만, 호불호라는 것이 오롯이 개인적인 것이라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명확하게 그렇다고 하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 인간은 주변에 의해 수많은 영향을 받고 다수에 따라가려는 성향이 있기 때문에 분명히 호불호에 있어서 보편은 존재할 것이다. 예를 들어, 흔히 배고픈 상황에서 헛 배고픔과 진짜 배고픔을 구별하기 위해 브로콜리를 먹고 싶은가에 대해 논한다. 브로콜리라도 먹고 싶으면 진짜 배고픔이고, 그건 아니다 한다면 헛 배고픔이라는 것이다. 이 예에 있어서 브로콜리는 보편에 의해 불호인 것이다. 그렇게 브로콜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보편적이지 않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다. 뭐 그렇다, 이 글을 쓰는 필자는 보편적이지 않은 사람이다. 

브로콜리같이 뭔가 이유 없는 보편의 불호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것도 있는 반면에(물론 브로콜리라는 채소(?)는 맛이 없다(무맛)는 등의 어떠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필자는 잘 모르겠지만) 이유 있는 불호도 있을 것이다. 그 이유가 무엇이길래 대부분이 불호하는가. 보편과 다른 것들에 다름이라는 이유로 발생하는 불호가 대부분일 것이다. 다름이라는 것이 왜 불호하는가. 보편이 받아드리기 어려움이 불호라는 형태로 표출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당연하게 할 수밖에 없는 일련의 사회적 이슈들이 상당히 많이 존재하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보편이 받아들이기 어려울 정도의 다름이 불호라면 보편이 받아들일 수 있는 정도의 다르지 않음(작은 다름)은 과연 호의 영역일 것인가. 수많은 반례에 의해 우리는 저 문장이 지극히 거짓임을 알고 있다. 필자가 관심 있어 하는 분야 중에 생각할 만한 호불호에 해당하는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은 불쾌한 골짜기에 대해서 들어본 적 있는가.

불쾌한 골짜기(Uncanny valley)는 1970년에 로봇 공학자 모리 마사히로의 에세이에서 언급되어 세상에 알려졌다. 로봇 공학자 모리 마사히로에 따르면, 로봇이 점점 더 사람의 모습과 흡사해질수록 인간이 로봇에 대해 느끼는 친화감이 증가하다가 어느 정도에 도달하게 되면 갑자기 강한 거부감으로 바뀌게 된다. 그러나 로봇의 외모와 행동이 인간과 구별 불가능한 정도가 되면 친화감은 다시 증가하여 인간이 인간에게 느끼는 감정의 수준까지 접근하게 된다. 이때 로봇의 모습과 행동에 의해 느껴지는 거부감이 존재하는 강한 거부감을 느끼는 영역을 불쾌한 골짜기라고 한다. 이 현상은 ‘거의 인간에 가까운’ 로봇이 실제로는 인간과는 달리 과도하게 이상한 행동을 보이기 때문으로 볼 수 있는데, 인간과 매우 유사한 개체에서 인간과 닮지 않는 특성들이 쉽게 드러나게 되어 인간의 입장에서 ‘이상하다’라고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불쾌한 골짜기 현상을 단순히 인간과 닮은 로봇의 이야기에서 확장하여 지금 논하는 호불호에 연관 지어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불쾌한 골짜기는 ‘인간과 닮음’이라는 기준점에서 발생하지만, 이 기준점을 ‘보편성’ 혹은 ‘익숙함’이라는 더 넓은 개념으로 치환해 본다면 어떨까. 인간의 사회와 문화가 암묵적으로 형성해 놓은 ‘보편’이라는 안락한 계곡에서, 우리는 대부분의 존재에 대해 안정감을 느낀다. 완전히 이질적인 존재, 예를 들어 외계인이나 상상 속의 괴물 같은 것들은 우리의 계곡 밖에 있기에 두려움이나 신기함의 대상이 될 뿐, 불쾌한 골짜기의 대상이 되지는 않는다. 문제는 우리의 계곡과 거의 흡사하지만, 결정적인 한두 가지 요소가 어긋나 있는 존재들이다. 과도하게 친절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영혼이 느껴지지 않는 서비스직원의 미소, 최신 유행을 모두 따랐지만 자신과는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은 사람에게서 느끼는 미묘한 어색함, 혹은 대중적인 성공 공식을 그대로 답습했지만 독창성이 거세된 영화나 음악. 이 모든 것이 인간이 일상에서 마주하는 작은 불쾌한 골짜기일 수 있다. 그것들은 보편에 가까워지려 노력했지만, 그 어설픈 시도가 오히려 미세한 이질감을 증폭시켜 인간의 무의식에 불편함의 경고등을 켠다.

인간과는 완전히 다른 것, 이질적인 것에 대해서는 명확한 ‘불호’를 표현하거나 혹은 아예 ‘무관심’ 또는 이질적인 것에 ‘호‘를 표현하기도 한다. 나와 전혀 다른 취향을 가진 사람을 이해할 수는 없어도 그 존재 자체를 불편해하지는 않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우리와 비슷한데, 어딘가 결정적으로 다른’ 대상에 대해서는 거의 모든 사람이 보편적인 불호를 ‘불편함’과 ‘거부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는 그 대상이 인간이 속한 ‘보편’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고, 인간이 믿어온 안정적인 세계관에 미세한 균열을 일으키기 때문은 아닐까.

결국 우리가 느끼는 호불호, 특히 강렬한 불호의 감정은 대상과의 ‘거리’ 문제일지도 모른다. 너무 멀면 무관심하고, 적당히 가까우면 호감을 느끼지만, 거의 맞닿을 듯 가까워진 그 지점에서 발견되는 미세한 균열이 가장 큰 감정적 동요를 일으키는 것이다. 브로콜리를 싫어하는 것은 그저 멀리 있는 존재에 대한 명확한 선 긋기이지만, 인간을 어설프게 닮은 로봇을 싫어하는 것은 나의 존재론적 안정감을 위협하는 것에 대한 본능적 방어기제에 가깝다.

어쩌면 인간의 뇌는 완벽한 패턴을 선호하는 것이 아니라, 패턴에 맞지 않는 사소한 ‘오류’를 찾아내는 데 더 특화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오류에 대한 경고 신호가 바로 ‘불호’라는 감정의 형태로 나타나는 것은 아닐까. 당신의 불호는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그것은 정말 대상의 문제인가, 아니면 당신이 가진 완고한 ‘보편’의 틀에 대한 문제인가. 그 불쾌한 골짜기 앞에서 잠시 멈춰 생각할 때, 우리는 자신과 세상을 조금 더 깊이 이해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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