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일반적으로 영화관에는 별도의 쉬는 시간이 없다. 첫 상영도 시작하기 전, 아침 일찍부터 관객을 반기며 환하게 켜진 조명들은 다음날 새벽에 마지막 상영이 끝난 후에야 비로소 하나 둘 꺼진다. 한 차례 상영이 끝나면 다음 회차를 준비하는 동안 잠깐의 공백이 생기지만, 그 시간마저도 극장은 새로운 관객들을 맞이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인다. 그런데 이렇게 쉼없이 영사기가 돌아가는 영화관에도 비공식적인 브레이크 타임이 있다.
오후 2시. 특히 평일 오후 2시는 극장가의 ‘죽음의 시간대’라 불리기도 한다. 점심 시간이 끝나고도 대략 1시간 정도가 더 흐른 이 시간은 영화를 보기에 조금 애매하다. 구체적으로 파고들 것도 없이 조금만 생각해봐도 그 이유는 명확하다. 보통의 평일 오후에는 어두운 극장에 앉아 영화에 빠져드는 것 보다는 나른해진 몸에 카페인을 때려넣으며 자꾸만 내려오는 눈꺼풀과 씨름하는 편이 더 자연스럽지 않은가. 특별한 일이 없다면 학생은 학교에서, 사회인은 직장에서 스크린이 아닌 현실에 집중하고 있을 시간이다. 게다가 이 시간은 조조 할인도 끝난 후라 특정한 영화를 찾아 온 몇몇의 열성적인 관객만이 듬성듬성 채워진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 오후 2시 극장의 평범한 풍경이다.
물론 주말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지기도 한다. 일상의 리듬이 깨는 것이 하나의 즐거움이 되는 주말에는 오후 2시가 영화를 보기에 그렇게 이상한 시간이 아니다. 오히려 영화관이 가장 북적이는 시간일 수도 있겠다. 잠시 주말 오후 2시 영화관의 모습을 떠올려 본다. 로비에는 나들이를 온 가족과 데이트하는 연인, 기분 전환을 하러 온 학생과 모임을 하는 어르신들까지 다양한 관객들이 무리지어 앉아있다. 매점 줄은 길게 늘어서 있고 상영 시간을 확인하며 서둘러 발걸음을 옮기는 이들의 표정에는 영화에 대한 기대가 서려있다. 분명 그랬다. 적어도 몇 해 전까지는 말이다.
2.

지난 주말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를 보러 서울고속터미널에 다녀왔다. 상영 시작 시간은 오후 2시 10분 전이었다. 서울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유동인구를 자랑하는 고속터미널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지하철에서 내린 시각은 1시 45분. 광고 시간을 생각하더라도 영화 시작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지하철에서부터 지하 상가와 백화점 식품코너까지 넘치는 인파를 뚫고 도착한 영화관 로비는 바깥의 소란스러움이 어색할 정도로 무척 조용했다. 혹시나 기다리는 사람이 많아서 종이 티켓을 못 뽑거나 매점에 들릴 수 없을까봐 걱정하며 추천 경로를 계속 새로고침하던 조금 전까지의 모습이 무안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다. 당장 전날 밤 온라인으로 좌석을 고를 때만 하더라도 소위 명당이라고 불리는 자리가 모두 비어있었다. 보러 간 영화가 인기가 없는 것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개봉 첫 주 박스오피스 1위를 한 이 영화는 티켓 파워가 아주 강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팬층이 단단한 스타 감독 PTA가 찍었고,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숀 펜이 출연하며, 할리우드의 대형 스튜디오 워너 브라더스가 제작과 배급을 맡은 영화다. 그런데도 이렇게 사람이 없다니. 관객이 적은 덕분에 편안한 자리에서 쾌적하게 영화를 볼 수 있었지만, 리더필름이 상영될 때 희미한 불빛이 텅 빈 객석의 풍경을 비추자 마음 한 켠에서 씁쓸함이 올라오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이제는 주말에도 ‘죽음의 시간’이 적용되고 있다. 요즘 극장은 늘 한산하다. 언제라도 좀처럼 북적이는 일이 없고, 관객이 많아 줄을 지어 입장을 한다거나 객석이 매진되어 관객으로 가득한 상영관의 모습은 이미 전 세대의 추억 속으로 사라졌다. 어쩌면 극장가 전체가 오후 2시에 멈춰있는 것 같다. 간간히 몇 편의 영화들이 이뤄낸 뜻밖의 성취나 몇몇 영화제의 흥행 소식이 들려오기는 하지만 극장을 이탈하는 관객의 수는 해가 바뀔 수록 더 많아지고 있다.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 기준 2025년 10월 21일까지 약 8300만명의 관객이 극장을 찾았다고 한다. 상반기가 끝날 무렵 약 4천만 관객을 기록했던 극장가는 1억 관객을 넘길 수 없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표했고, 올해가 100일이 채 남지 않은 지금 그 우려는 점점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여름 시장의 기대작이었던 〈F1 더 무비〉가 기대에 부흥하는 성적을 냈고, 〈좀비딸〉이 예상을 뛰어넘는 성적을 기록하며 분위기가 바뀌나 싶었지만 극적인 반전은 없었다. 지나간 올해를 반추하며 내년을 바라보는 업계의 사람들은 입을 맞춰 위기는 계속될 것이고, 침체는 앞으로도 이어질 것 같다는 전망을 내놓는다.
인구가 5천만이 채 안 되는 나라에서 8300만명의 관객은 충분하지 않냐고 할 수 있다. 사실 맞는 말이다. 한때 1인당 평균 영화 관람 횟수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았던 한국인들은 여전히 영화를 많이 보는 편에 속한다. 극장의 위기를 외치던 작년에도 평균 관람 횟수와 박스오피스 매출은 세계 8위와 9위를 기록했다. 이쯤되면 정말로 지금의 관객 수는 그리 문제될 것이 없어 보이는데, 왜 그렇게 영화인들은 1억 관객이라는 수치에 집착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생기기도 한다.
그 이유를 조심스레 추측해보자면 1억 관객을 달성하지 못한다는 것은 산업의 기본값이 바뀜을 의미하기 때문인 것 같다. 영화관 입장권 통합전산망이 가동된 2004년 이후 1억 관객이 깨진 적은 코로나 19 팬데믹을 겪은 2020년과 2021년을 제외하면 한 번도 없었다. 곳곳에서 곡소리가 들리며 멀티플렉스를 포함한 여러 영화관이 문을 닫던 작년에도 1억2천만명이 극장을 찾았다. 지금과 같은 추세라면 올해는 그것보다도 30%가 넘는 하락이 예정되어 있는 셈이다.
극장의 침체는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북미와 유럽 시장도 비슷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영화 통계 사이트 〈더 넘버스〉는 미국과 캐나다 등 북미 영화시장의 2025년 극장 관객 수가 7억명을 간신히 넘을 것으로 예상했다. 2023년에는 8억2천만명이었던 관객이 작년에는 7억6천만명으로 줄었고, 올해도 비슷한 수준의 하락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스크린달러스〉라는 매체가 미국의 극장주 246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는 과반이 넘는 수가 지금의 영화관 사업 모델의 남은 수명은 20년 정도라고 답하기도 했다.
3.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점점 영화관을 찾지 않는 것일까? 코로나19 팬데믹 속 사회적 거리두기와 그 뒤로도 긴 시간 이어진 경기침체와 높아진 티켓값, OTT 서비스의 확대 등 최근 몇 년 동안 영화관을 찾지 않을 이유는 꾸준히 늘어왔다. 사실 극장도 극장이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영화라는 매체 자체에 위기가 찾아오는 것 같기도 하다.
영화를 찾아보게 된 지 얼마 안 된 나는 영화를 좋아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영화의 시대가 끝났다는 말을 들어왔다. 이제 막 영화에 관한 취향이 생기던 시기에 극장에서는 영화가 사라진 미래를 소재로 한 〈썸머 필름을 타고!〉가 상영되고 있었다. 〈썸머 필름을 타고!〉가 개봉한 2022년에는 영화를 구하기 위해 과거로 시간여행을 한다는 설정을 귀여운 상상이라고 생각했다. 영화를 본 친구와 언젠가 그런 미래가 오겠지만 아주 금방은 아닐 거라는 이야기를 했던 것도 기억난다. 그런데 몇 년 사이 상황이 달라졌다. 숏드라마를 보는 사람들이 점점 늘고 숏폼 콘텐츠만을 다루는 OTT 서비스가 출시되는 요즘에는 영화의 소멸이 그렇게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커져만 간다.
영화 속에서 사람들이 영화를 보지 않는 이유는 ‘시간이 없어서’라고 한다. 그렇다면 현실의 사람들은 어떨까. 『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는 사람들』이라는 책을 읽은 적 있다. 일본을 대표하는 영화 잡지 『키네마 준보』의 편집장을 지낸 저자는 사람들이 더이상 영화를 영화로 보지 않는—영화를 빨리 감기와 건너뛰기, 더 나아가서는 요약본으로 영화를 보는—인구가 늘어나는 현상을 분석하고 그 원인을 파헤친다.
저자는 그런 방식으로 영화를 감상하는 이유를 세 가지 정도로 정리했다. 첫 번째 이유는 볼 수 있는 콘텐츠가 많아짐에 따라 한정된 시간 내에 최대한 많은 콘텐츠를 즐기고 싶어하는 경향이 생겨난 것이고, 두 번째 이유는 시간 낭비가 죄악인 시대에서 실패의 위험부담을 안고 긴 콘텐츠를 보는 것을 꺼려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이유는 대사로 중요한 정보를 전달하는 작품이 많아져서 영화를 이해하기 위해 꼭 모든 장면을 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왓챠피디아의 ‘보고싶어요’ 탭에 쌓인 영화가 어느덧 네 자릿수에 가까워진 관객의 입장에서 첫 번째 이유에는 쉽게 공감할 수 있다. 하루종일 영화만 본다고 하더라도 평생 그 많은 영화를 다 볼 수 있을지 모르기에 배속과 건너뛰기는 어쩌면 영리하게 영화를 즐기는 태도일 수도 있겠다. 대사로 설명하는 영화가 많아서 모든 장면을 볼 필요가 없어졌다는 말은 그리 와닿지는 않지만, 핵심적인 대사와 장면만을 모아 놓은 ‘결말 포함’ 영화 리뷰가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고 그런 영상으로 영화를 즐기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현실을 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실패의 위험부담을 덜기 위해 배속을 사용하거나 요약본을 본다는 의견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여기서의 실패는 예측하지 못한 충격을 의미하리라. 보장된 즐거움을 추구하는 이들의 효율성을 비판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실패를 무작정 회피하려는 태도는 영화가 주는 큰 즐거움을 방해한다고 생각한다. 시간을 내서 보러 간 영화가 예상과 달라서 배신감이 들거나 아쉬움이 들 때가 분명히 있다. 하지만 그런 종류의 실패가 늘 불쾌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관객의 생각이 미처 닿지 못한 곳으로 나아가는 영화는 기분 좋은 실패를 선물한다.
모든 영화가 그런 종류의 기쁨을 준다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매년 극장에서는 영화의 시대가 끝났다고 단언하는 회의론자들의 입을 납작하게 만들며 관객에게 전에 없던 짜릿한 실패를 선물하는 신작들이 개봉한다. 앞서 언급한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가 그런 영화 중 하나다.
시놉시스를 보고 순수한 장르 영화를 기대한 관객은 미국의 시대정신을 파고드는 감독의 도발적인 연출에 배신감을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거대한 화면 속에 펼쳐지는 폭력과 충돌, 혁명의 이미지는 어느새 현실의 모습과 겹쳐지며 관객을 영화에 몰입시킨다. 실제 사건이나 인물을 연상시키는 상황과 캐릭터를 따라 영화와 현실을 넘나드는 관객들은 어느새 각자의 혁명을 마음 속에 그리게 된다.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는 대사 보다 장면으로 기억되는 영화다. 영화는 상황을 말로 풀어서 설명하기 보다는 현실감 넘치는 화면으로 세상의 모습을 비춘다. 영화를 보며 우리가 현실을 떠올릴 수 있었던 이유는 우리의 눈이 보는 세상과 가장 비슷한 색감과 질감을 재현한 비스타비전 포맷의 화면과 긴장을 유지하도록 만드는 생생한 음향과 이미지가 만들어 내는 충격을 극대화하는 음악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연히도 이처럼 섬세하게 구성된 영화의 각 요소들이 관객에게 온전히 닿을 수 있는 공간은 오직 극장 뿐이다.
그렇게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는 ‘큰 스크린에서 볼 가치가 있는’ 영화라는 평가를 받으며 호평 속에서 개봉했다. 하지만 상황은 생각보다 녹록치 않다. 작가주의 감독이 만든 3시간에 달하는 R등급의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개봉 첫 주 박스오피스 1위에 안착하며 준수한 관객수를 기록한 영화는 그렇게 쭉 성공가도를 달리나 싶었지만 평단과 대중의 찬사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손익분기점을 달성하지 못했고, 제작사인 워너 브라더스는 1억 달러가 넘는 손해를 감당해야 할 것으로 예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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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최고의 기대작도 극장에서 좌절을 맛볼 수 밖에 없는 시대가 왔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디지털 VOD 판매와 스트리밍 공개를 통해 그 손해가 조금은 매꿔질 수 있다는 것. 워너 브라더스는 영화의 온라인 공개 시기를 앞당기는 계획을 세우며 이번 실패에 대응하는 중이다. 이쯤되면 극장의 붕괴는 거부할 수 없는 흐름이고, 그것을 부정하는 태도가 미련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영화관을 더이상 찾지 않는 세태에 부정적인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닐 테다. 영화를 즐기는 방식은 시대에 따라서 줄곧 변해왔고, 지금까지는 그 중심에 극장이 있었지만 언제까지나 그래야만 한다는 법은 없다. 1950년대 가정용 TV의 보급은 영화의 공간적 제약을 무너뜨렸고, 1980년대에 등장한 비디오와 DVD는 영화를 시간의 제약으로부터 벗어나도록 만들었다. 2000년대 이후에는 컴퓨터와 노트북으로도 영화를 보는 시대가 열렸고, 온라인이 오프라인과 거의 대등한 지위를 가지게 된 오늘날에는 스트리밍이 어쩌면 가장 기본적인 영화의 감상 방식이되는 게 자연스러운 것 같기도 하다. 극장에 갇혀서 봐야했던 영화를 언제든지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이런 변화를 일종의 해방이라 부를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여전히 극장을 애정하는 관객인 나는 이런 변화에 저항하고 싶은 마음이다. 극장은 관객을 한 자리에 붙잡아둔다. 그곳에서 우리는 영화의 리듬에 맞춰 호흡하고, 이야기의 파도에 몸을 맡긴 채 영화가 보여주는 세상을 모험한다. 저마다의 사연을 가지고 객석에 앉아 있는 익명의 관객들은 영화가 상영되는 동안 함께 울고 웃으며 묘한 유대감을 나눈다. 일상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과 들을 수 없는 소리, 광고가 끝나고 영화가 시작하기 전 어두워진 공간의 설렘과 스크린에 펼쳐질 새로운 세계에 대한 기대감 등은 분명 극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감각이다.
또, 좀처럼 진득하게 한 가지 일에 몰두하기가 어려워진 집중력 결핍의 시대에 영화관이 제공하는 몰입은 귀중한 체험이 된다. 극장은 가성비와 자극만을 추구하며 점점 더 짧아지는 콘텐츠들과 생각의 확장을 가로막는 맞춤형 알고리즘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우리가 세상을 낯설게 바라보고 새로운 사유를 할 수 있는 시간을 선물하는 탈출구가 되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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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영화관의 시계는 오후 2시를 가리키고 있다. 하지만 시간은 흐를 것이다. 극장은 새로운 경쟁을 하고 있다. 때로는 콘서트장이나 오페라 극장이 되기도 하고, 직장인들이 낮잠을 자는 쉼터가 될 때도, 아이들의 놀이터가 될 때도 있다. 사실 이미 우리가 기억하는 극장의 모습은 사라진지 오래인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영화관은 앞으로도 변화를 거듭할 것이다. 하지만 모습이 달라진다고 해도 극장은 극장이다. 무수히 많은 지표가 영화관의 소멸을 예견하지만 나는 왠지 언제까지나 영화관이 존재할 것 같다. 극장의 소멸을 근심하는 목소리가 크다는 것은 그만큼 극장에 대한 애정이 존재한다는 것이니 말이다.
문준혁
mediatheque410@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