춥다. 방 안의 온도를 25도까지 올려 놓아도, 회색의 헐렁한 반팔티와 여성용 트렁크 한 장만 걸치고 있으면 그닥 따뜻한 겨울의 방은 아니다. 새벽 6시 30분에 어렴풋이 뜨인 눈을 애써 감으며 절대적인 겨울 냉기에 옅은 의식으로 이불을 턱끝까지 끌어올린 후, 습관적으로 몸을 왼쪽으로 돌려누웠다.
한 1시간 정도 더 잤나… 온기와 감촉은 느껴지지 않는데 누군가가 나를 만진다고 생각했다. 장기 깊은 곳에서부터 뼈를 뚫고 올라오는 간지러움과, 말초신경이 자극되는 듯한 멜랑콜리한 간지러움. 동시에 내 등에서부터 오른팔까지 숨 없는 숨과 거대한 체구가 나를 짓누르며 파고드는 것 같았다.
남자였다. 그냥 감각적으로 나는 분명 남자라고 생각했으며, 우리 집에 남자는 아빠뿐이라 순간 아빠인가 생각하고 마음이 불미스러워졌지만, 잠결에 다시 의식이 끊길 때 본 형상은 결코 아빠가 아니었다. 다행이라는 착각과 오히려 더 커진 불안감 속에서 여전히 누군가가 나를 만지는 느낌은 지속되었고, 그게 느낌인지 사실인지 분간이 안 되어 차라리 오른쪽으로 몸을 돌렸다.
몸을 돌렸다.

“가위를 눌린다면 손가락과 발가락부터 움직여라.” 라는 글과 말이 어렴풋이 기억 나서 필사적으로 손가락과 발가락의 감각을 일깨우려고 부단히 움직였다. 왼손의 손가락을 움직이자 왼팔이 풀린 듯했지만, 여전히 나의 오른편은 내 몸이지만 내 것이 아니었다. 내 몸의 절반은 실존하지 않는 존재와 닿아 있었고, 내 시야에서도 오른쪽은 검게 느껴졌다. 나의 왼쪽은 온전히 나의 것이지만, 나의 오른쪽은 내 의사와 상관없이 공유되는 몸이 되어 있었으며, 순간 반인반령(半人半靈)의 몸이 될 것만 같은 착각에 묘한 긴장감과 정신이 깨어나고 다시 잃는 과정의 경계에서의 몽롱함 탓에 그의 얼굴이 보였다.
당장이라도 내 얼굴 위로 물방울이 떨어질 것 같은 검고 길게 젖은 머리카락과 날카로운 얼굴. 어쩌면 그의 머리카락은 이미 내 얼굴 위에 닿았을지도 모른다. 그 정도로 서로의 얼굴은 가까웠으니까. 숨결도, 온기도, 감촉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냥… 그런 느낌.
두 눈과 뺨, 콧잔등, 그리고 턱에 그의 머리칼에 맺혀 있던 물방울이 닿았다. 이것 또한 왠지 그런 느낌. 실체는 없다.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 속에서 내가 만들어낸 허상의 형상이 눈앞에 보이는 듯한 착각인 것일까, 아님 실제로 그런 형상을 한 존재를 내가 하필 그 경계 속에 깨어 있어서 드디어 마주하게 된 것일까. 그는 내 방에 살고 있던 존재였던 걸까. 몇 번이나 내 몸속에 들어왔던 걸까. 늘 내가 자는 걸 지켜봤던 걸까. 언제부터 내 오른쪽의 몸은 공유되었던 걸까. 분명 그는 내가 그를 의식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 눈치였는데.
이 감각을 한 번 느껴본 이상 두 번은 쉬울 것 같다는 예감이 강하게 들었으며, 그와 접속되어 있는 순간 동안 나는 더 이상 그를 허상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어떠한 덩어리’로서’ 대하고 있었다.
몸을 수차례 좌에서 우로 다시 돌려본다. 팔과 팔로 가슴과 어깨를 동그랗게 말아 끌어안았다가, 활처럼 척추를 분절하여 세웠다가, 다시 분절하여 침대 시트 위에 내려놓았다가, 이내 골반을 단단한 나무의 뿌리처럼 곧게 세워 정신을 차렸다.
*
방 안은 너무나도 평화로웠고, 유난히 가습기만 한창 돌아가고 있었다. 지나치게 평온해서 오히려 불편했고, 방금 겪은 기이한 현상에 현실을 직시하고자 곧장 거울 앞에 섰다. 천천히 손을 들어 턱부터 머리까지 마른 세수를 쓸어내리다가 턱 부근에서 느껴진 단단하고 작은 돌기. 살아 있는 덩어리처럼 불룩 솟아 있었다. 여드름이었다.
어젯밤에는 없었던 것이 깨어나고 보니 붉고 둔탁하게 부어올라 있었다. 이상하게도 싫지 않은 탓에 거울을 계속 바라보다가 손을 들어 머리를 높게 묶었다. 미처 묶이지 못한 다른 것보다 짧은 머리칼이 얼굴에 떨어졌고 그 끝에는 다시 또 턱의 여드름.
오랜만에 마주한 여드름이라 그런지 붉게 부어오른 것이 섹슈얼하게 느껴질 정도로 어색하고, 싫진 않았지만 짜증 나고, 신경이 쓰여 섹슈얼하게 느껴졌다. 근원은 호르몬과 스트레스 탓이겠거니 생각했지만, 오늘 아침에 얼굴 위로 떨어진 물방울이 떠올라 다시 섬뜩해졌다가 묘해진 하루의 시작이었다.
유예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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