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기억과 도망친 연대

연대는 어디까지 가능한가. 우리는 타인의 삶에 어디까지 개입할 수 있으며, 언제 물러나야 하는가. 우리가 현실에서 ‘연대’의 이름으로 가장 자주 서는 자리는 당사자가 아니라 이웃이다. 가족도 보호자도 제도적인 전문가도 아닌 ‘이웃’의 위치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없을까. 

우리는 타인을 도움으로써 비로소 나 자신이 괜찮은 사람임을 확인한다. 연대는 타인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결국 나를 견디게 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이 불순한 동기를 외면한 채 연대를 말하는 순간, 연대는 쉽게 시혜가 되거나 감당할 수 없는 개입으로 변질된다.

자비에 돌란의 영화 <마미>는 바로 이 지점에서 연대를 미화하지 않는다. 이 영화는 ‘카일라’라는 이웃의 위치를 통해 연대가 품고 있는 가능성과 동시에 피할 수 없는 한계를 집요하게 드러낸다.

영화 속 카일라는 말을 더듬는다. 그녀의 언어는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한 채 목 안에서 맴돌고, 침묵은 곧 그녀의 일상이 된다. 반면 스티브와 다이는 정반대의 방식으로 고통을 표출한다. 그들은 소리를 지르고, 욕설을 뱉고, 폭력을 행하며 감정을 폭발시킨다. 카일라가 내부로 침전하는 침묵의 고통을 살아간다면 다이와 스티브는 외부로 터져 나오는 소음의 고통을 견딘다.

흥미로운 것은 이 상반된 결핍이 만날 때 발생하는 변화다. 카일라는 가장 불안정하고 폭력적인 타인(다이와 스티브)의 곁에서 비로소 말과 웃음을 되찾는다. 그녀가 스티브의 공부를 돕고, 다이와 자매애에 가까운 우정을 나누며 외로움 속에서 구원한 것이 전부가 아니다. 그들 또한 카일라를 우울과 침묵으로부터 잠시 구원한다.

스티브가 카일라에게 자신의 공부를 도와달라고 청하는 장면까지 카일라는 다이와 스티브와 함께 있을 때 말을 잘 더듬지 않고 편하게 이야기한다. 하지만 같은 공간에서 카일라의 딸과 남편이 말을 걸어오자 카일라의 말문은 다시 턱 막혀버린다. 카일라에게 다이와 스티브라는 이웃은 순식간에 안정적이고 편안한 환경이 되어주었지만 오랜 시간을 함께 살아온 가족은 여전히 불편하고, 힘겨운 환경이다.

여기서 연대는 수직적인 시혜가 아니라, 결핍이 결핍에 기댈 때 발생하는 상호성으로 나타난다. 완전한 강자가 약자를 구하는 구조가 아니라 서로 다른 방식으로 깨진 존재들이 맞물리며 잠시 숨을 고르는 상태가 된다. “내 삶은 나만이 구원할 수 있다”는 개인주의적 신화는 이 순간에 금이 간다. 우리는 서로를 ‘어쩌면’ 구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위태로운 연대는 다이가 스티브를 시설로 보내는 선택 앞에서 균열을 맞는다. 이 선택은 다이에게는 생존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카일라에게는 삶에 대한 위협으로 다가온다. 카일라는 자신의 삶과 커리어보다는 남편의 삶을 우선시하는 선택을 해왔다. 언제 어디로 이사 가야할지 모르지만 가족을 위한다는 명목하에 인내하는 방식은 삶을 유지하는 선택이자 스스로를 정당화하는 믿음이었다. 하지만 다이는 끝없는 고통 속에서, 자신의 삶을 위협하는 아들을 분리해낸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고, 다이가 아들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들을 버렸다(분리했다)’는 사실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고통을 분리하는 이 선택은 카일라에게 어쩌면 이런 질문으로 다가왔을 수도 있다. “나는 끊어냈는데 너는 왜 아직도 참고만 있니?” 이 순간 카일라는 다이의 선택을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 아니라 이해해서는 안 됐을 것이다. 다이를 이해하는 순간, 지금까지 버텨온 자신의 삶 전체가 흔들릴 테니까. 여기서 연대는 더 이상 위로도 구원도 되지 못하고 자신의 삶을 위협하는 질문이 된다.

결국 카일라는 떠난다. 이사는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관계로부터의 이탈이자 도망침이다. 가족인 다이와 스티브에게는 도망칠 곳이 없다. 그러나 이웃인 카일라에게는 언제든 문을 닫고 돌아갈 수 있는 ‘나의 집’, 안전한 세계가 있다. 그 세계가 카일라에게 얼마나 안전과 편안함을 줄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은 별개의 문제이다. 남편의 직장을 따라 떠나는 그녀의 선택은 결국 안온한 중산층의 삶, ‘정상 가족’의 궤도로 복귀하는 일이다. 결정적인 순간에 자신의 세계로 물러날 수 있는 이 특권. 이것이 당사자가 아닌 이웃이 넘을 수 없는 벽이다. 

연대는 여기서 분명해진다. 누군가는 끝까지 삶을 견뎌야 하고, 누군가는 떠날 수 있다.

그렇다면 카일라의 연대는 실패였을까. 그녀는 결국 도망친 위선자에 불과한가. 그렇지 않다. 다이의 선택이 보여주듯 제도는 인간을 효율적으로 관리할 뿐이다. 그러나 카일라는 관리하지 않았다. 그녀는 스티브가 가장 스티브답게 웃고 떠들 수 있도록 자신의 삶 일부를 내어주었고, 그녀도 그들의 삶 속에서 안정을 발견했다. 제도는 통제하지만, 이웃은 인간을 존재하게 한다.

비록 결말은 이별이었고 그녀는 떠났지만 그들이 함께했던 시간, 그 순간의 자유로움과 해방감마저 거짓이 되는 것은 아니다. 완벽하지 않은 연대, 끝내 도망칠 수 밖에 없었던 연대일지라도 그 시도는 분명 누군가를, 그리고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잠시 숨 쉬게 했다.

우리는 타인의 삶을 끝까지 책임질 수 없다. 때로는 두려움에 물러나고 나의 안전한 집으로 숨어 버린다. 그러나 비록 도망칠지라도 곁에 머물렀던 그 순간의 진심까지 부정될 수는 없다. 어쩌면 연대란 타인을 완벽히 구원하는 거창한 행위가 아니라 서로의 결핍에 기대어 잠시나마 숨 쉴 구멍을 만들어주고, 헤어질 때 서로의 행복을 빌어주는 그 짧은 환대의 마음일 것이다.

박혜주

uluvme1229@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