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 편지를 쓰는 방법

여상한 겨울이다. 

일기예보에서는 폭설이라 하고 창밖에는 두툼한 눈 뭉치가 나린다. 이런 날이면 떠들썩한 모임과 나들이가 귀찮다.  질리도록 봤던 드라마와 전기장판 위 이불만이 일상의 반경이다. 

이상한 겨울이다. 그토록 골머리 싸매고 고민했던 일들이 무용하게 느껴진다. 그건 아마 추위 앞에서는 모두 공평하게 그저 옷깃을 여미는 어린애가 되기 때문일 테다. 세상을 따뜻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온도로만 사고하기에 삶이 보다 단순해진다.

생명력이 있는 것들이란 것들은 모두 얼려버린 추위는 기어이 온 세상을 일시 정지시켰다. 당장 죽을 것만 같던 슬픔도, 마냥 들뜨게 하던 기쁨도 잠시 얼려본다. 아마 봄날에야 해동이 될 것이다. 긴긴 겨울잠 동안은 얼어 죽지만 않으면 된다.

귤을 상자째 까먹던 손가락 끝이 노르스름해질 때쯤, 흘러나오는 영화를 쳐다보는 것도 지겨워지면 그제야 현관을 나선다. 눈사람처럼 겹겹이 싸맨 탓에 추위는 콧방울 끝만 스치고 간다. 며칠 새 내린 눈은 보도블록 위를 가득 덮었다. 온 세상이 하얀 종이 같다. 새로운 스케치북 위에 연필 선을 긋듯, 떨리는 마음으로 눈밭 위에 발자국을 낸다. 새하얀 정적은 발걸음 하나에도 집중하게 만든다. 뽀득거리는 소리에 슬며시 웃음이 나고, 눈을 들어 주위를 둘러본다.

눈이 한 겹 내려앉았을 뿐인데, 풍경이 어제와 다르게 새삼 낯설다. 집 마당 시멘트에 갈라진 자국, 벤치 밑의 담배꽁초, 방지턱 위의 물때. 눈발은 화이트 용액처럼 모든 것을 덮어 지워냈다. 시시콜콜한 희비들이 희미해져 잘 보이지 않는다.

마음의 정경도 그러하다. 겨울밤에는 모든 기억이 미화되어 생경해진다. 꼭 누구에게 상처를 준 적도 받은 적도 없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마음 저 편에 넘겨둔 그리운 얼굴들을 떠올려본다. 꼭 처음 마음에 담았을 때처럼 어여쁜 얼굴들을. 기억의 처음을 더듬다 보면 잠때를 놓치기 일쑤이다. 끝까지 그려내고 나면, 새벽 공기가 차가워 그제야 날 지난 줄을 안다. 

머리가 깨질 듯이 멍하다. 이런 날이면 꼭 편지를 쓰고 싶어진다. 

어릴 적, 연말이 되면 아버지는 항상 연하장을 쓰셨다. 그 옆에 앉아 황새와 해, 복주머니 따위의 그림들이 들어간 카드 중 가장 예쁜 것을 골라 따라 쓰는 데 재미를 붙였다. 별 내용은 없었다. ‘안녕하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삐뚤빼뚤한 글씨로 비싼 카드를 망쳐놓고 평소 듣지 못했던 이름을 봉투에 적어넣는 아버지에게 여쭤보았다.

“아빠, 그 사람은 누군데 카드를 보내는 거야?” 

먼 곳에 사는 친구였던가. 가까운 곳에 사는 낯선 이었던가. 왜 카드를 보내냐는 질문에 아버지는 이렇게 대답하신 것도 같다. 잘 못 보니까 소식을 전하는 거야. 그리우니까. 어른들은 왜 잘 보지도 않는 이를 그리워할까. 의문이 들었지만 다시 묻지는 않았다.

⟪윤희에게⟫, 2019, 스틸컷

“살다 보면 그럴 때가 있지 않니? 뭐든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질 때가.”

영화 ⟪윤희에게(2019)⟫는 편지를 읽는 나레이션으로 시작된다. 쥰은 윤희에게 이십여 년 만에 편지를 쓴 이유를 위의 한 문장으로 설명한다. 이 말이 심금을 울렸다. 살다 보면 정말 그럴 때가 있기 때문에. 문득 떠나간 누군가가 생각나고, 그 사람의 안부가 궁금해지는 때가, 미처 하지 못했던 말을 지금이라도 내뱉고 싶을 때가 있다. 아마 쥰에게는 오타루에 시린 겨울이 찾아오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이 그때였을 것이다.

그러나 쥰은 첫사랑이었던 윤희를 찾아 한국까지 바로 날아가지 않는다. 편지에 못다 한 진심을 적어내고, 그 편지를 부치지 않은 채 책상 위에 가만히 둔다. 평소와 다름없이 출근하고, 새로운 사람과 술을 마시기도 한다. 얼핏 그녀는 이런 애절한 편지를 썼을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되지 않는 담담한 얼굴이다. 책상 위 편지를 우체통에 넣어버린 고모 마사코의 도움이 없었다면 편지는 발송조차 되지 않고 영화가 끝났을지도 모른다.

⟪윤희에게⟫, 2019, 스틸컷

한국에 도착한 편지를 읽은 것은 윤희가 아닌 딸 새봄이었다. 새봄은 발칙하게도 이혼 후 일상에 지친 어머니를 위해 편지의 발신인이 사는 일본으로 함께 떠날 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오타루에 도착한 윤희는 쥰이 편지를 보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서도 이렇다 할 행동을 취하지 않는다. 그녀는 쥰이 보고 싶지 않은 것일까? 극 내내 두 사람이 만나지 못하는 답답함은 마지막 부분의 편지에서 비로소 해소된다.

“추신. 나도 네 꿈을 꿔.”

영화의 전면에서 드러나지 않는 윤희의 감정은 말 대신 글로 꾹 눌러 담아 쓰여있다. 사실 나도 같은 마음이었다고, 늘 네가 그리웠고 소식이 궁금했다고. 이십 년 동안 멈추었던 두 사람의 시간은 그제야 다시 흘러가기 시작한다. 

영화에서, 혹은 우리의 인생에서, 편지는 독특한 고유의 언어로 기능한다. 한 문장을 쓰는 순간 글은 과거가 되고, 봉투에 담겨 수신인에게 전해지기까지 편지 속의 현재는 멈춰 있다. 일정 시간이 지난 미래에서 상대는 고스란히 담겨있는 과거의 시간과 마음을 읽는다. 

어쩌면 편지는 그저 하고픈 말 이상의 다정이다. 만날 수 없는 사이 생긴 그리움이고, 오롯이 전해지길 바라며 정제한 사랑이다. 감히 편지에 거짓말을 적는 사람이 있을까? 아마도 쥰은, 윤희는, 아버지는 말로 다 못다 한 진심을 전하기 위해 편지를 썼을 것이다. 만나지 못했던 시간의 골을 이 문장들이 메꾸어 주길 바라면서, 머쓱함을 숨기고 어제 만난 것처럼 첫인사를 적으면서 말이다. 

어른이 된 나도 아버지처럼 편지를 쓴다. 아무런 장식이 없는 흰색의 두툼한 편지지 묶음을 사다가 생각이 나면 두 장이고 세 장이고 써본다. 말로는 절대 하지 못할 낯간지러운 말이나 솔직한 말도 적는다. 다만 연하장처럼 봉투에 넣어 수신인의 주소를 쓰지는 않는다. 마지막 문장에 마침표를 찍은 후 고이 접어 어딘가에 내버려둔다.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닿지 않을 말이 더 많기에. 그럼에도 굳이 부치지 못할 편지를 적어 내려간다.

이렇게 쓰다 보면 언젠가는 만나서 진심을 전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앞으로 찾아올 누군가에게는 더 다정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편지를 쓴다. 그리움을 담아. 

국 현

gukhyunstudio@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