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이십춘기의 꼴값으로 점철되어 있으니, 열람에 주의를 요합니다.
- 국경도 문자알도 문제가 아닌 시대
사촌 언니를 너무 좋아했다. 기억도 안 나는 시절부터 그냥 그 언니가 참 좋았다. 원래도 언니를 갖고 싶어 했다. 유치원생들이 하원 버스에 앉아서 하는 “너네 집 평수 뭐야, 전세야 월세야” 이런 느자구 없는 질문은 내게는 시답잖았고, 걔가 언니가 있는지 없는지가 제일 중요했다. 나보다 한 살 많은 사촌 언니는 애석하게도 첫째로 태어나버린 내가 가질 수 있는 유일한 언니였다. 그러니까 언니가 언니라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합격인데 나한테 잘해주기까지 했다. 언니네 동네에 놀러 가면 동네 친구들을 모아놓고 꼭 이렇게 말했다. 소영이는 깍두기 시킬 거야! 그럼 나는 멍청하게 깍두기가 뭐야? 이런다. 그런 내가 답답하지도 않은지, 굳이 알려준다. 너는 잡혀도 봐준다는 뜻이야! 이러고 술래잡기 시작한다.
그 사람이 언제 미국에 갔더라? 내가 열 살이던 여름에 갔으니까, 아마 십오 년도 더 된 일일 테다. (정확히 세면 이십 년에 더 가깝긴 한데 아무튼 십오 년이라고 우길 셈이다. 정확해지는 것은 우울해지는 지름길이다.) 문자알 다 쓸 때마다 부모님은 항상 같은 말을 했다. 언니랑 문자 좀 그만해! 너네 둘 다 문자하느라 숙제도 안 하잖아! 뭐 이런 것들. 언니랑 얘기하느라 다 썼다고 말한 적 없는데도 어른들은 다 눈치채고 있었다.
내가 언니를 가지고 싶어 했던 것만큼이나 그녀도 동생을 원했다. 정확히 같은 부분에 새겨진 우리의 결핍이 딱 맞물렸으니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나사 하나 없이도 완벽한 맞물림을 자랑하는, 장인이 만든 고급 가구와 닮았다. 강동구와 분당구가 뉴욕시와 분당구가 된 지 어언 십오 년. 그간 고작 세 번 만났어도 우리 사이에 문제는 없다. 아이메시지와 인스타 디엠이 있는데 뭐가 두렵겠는가! 이제는 문자알도 국경도 우리에게는 문제가 아니니 오히려 더 가깝다. 그래서, 그 가상의 거리에 속아서, 나는 세월의 속도를 완전히 잊고 있었다는 것을 최근에야 깨달았다.
- 콜팝을 안 팔아 BHC에서
지난 12월. 아주 오랜만에 언니가 한국에 돌아와서 자주 만났다. 하루는 BHC에서의 접선 날. 돈만 있으면 뭐든 구할 수 있을 것 같은 뉴욕이지만, 의외로 뿌링클을 먹기가 힘들다더라고. 그래서 너무 먹고 싶었대 우리 언니가. 근데 한국 친구들한테 ‘치킨집에서’ 치킨 먹자고 하면 욕할 것 같으니까 제발 같이 가달래. 그래서 갔다. 우리는 뿌링클이랑 콜팝을 주문할 생각이었다. 뿌링클은 본래 목적이고, 콜팝은 추억팔이 컨텐츠. 함께한 마지막 추억이 열 살 무렵이니 자연히 열 살 무렵의 취향으로 돌아간다. 테이블마다 놓인 키오스크를 만지며 생각한다. 이제는 메뉴판이 아니라 테이블마다 이런 태블릿이 있다니 정말 세상 좋아졌네.
헐 언니 어떡해. 콜팝이 없는데?
BHC에 콜팝이 없다고? 말도 안 돼!
아니, 봐봐 진짜로 없는데?
결국 콜팝을 먹을 수는 없었다. 뿌링클이나 먹는다.
와 진짜 한국 많이 변했구나. 콜팝이 없다고?
내말이. 오천 원짜리 한 장 들고 분식집 가면 콜팝에다가 맛감자 추가하고 떡꼬치랑 슬러시에 피카츄까지 쌉가능이었는데 이제 콜팝도 없고 치킨은 이만 원이 넘는다. 무슨 물가가 이렇게 빨리 올라? 우린 이제 겨우 용돈에서 쥐꼬리 월급으로 넘어왔는데. 이게 맞아?
이런 게 노스탤지어일까나. 그때는 그냥 세상이 변했다고만 생각했다. 요즘 초딩들은 그렇게 옹졸한 양의 치킨 같은 거 먹을 바에 한 마리랑 콜라 시켜서 콜팝이 없어진 건가? 뭐 그런 생각을 한다.
- 팔아. 파는데 콜라 미제공이래 언니
몇 주가 지났다. 이번에는 친동생이 내 방 와서 누나. 치킨 시켜 먹자. 이런다. 그래서 또 BHC 켠다. 얘는 후라이드 파여서 후라이드 담는다. 나 돈 들어왔으니까, 부르주아처럼 감자튀김도 먹자 ㅎㅎ 이러면서 사이드 메뉴로 내려간다. 근데 콜팝이 있더라고. 오 당장 콜팝으로 노선변경 드가자. 콜팝 사면 감튀도 오는데 뭔 감자튀김을 사천 원 주고 추가해 무조건 콜팝이지 ㅋㅋ 이런 소리 한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까 가격이 만 이천 오백 원이다. 무려 12,500원.
나 : ?
콜팝이 이천 원이 아니면 그건 콜팝이 아닌데. 오백 원 추가하면 소스 뿌린 맛감자까지 나와줘야 맞는데 뭔 콜팝이 만 이천 오백 원이야. 금가루라도 뿌렸나.
근데 또 자세히 보니까 (콜라 미제공) 이렇게 쓰여있다.
이제는 그냥 내 시력을 의심한다. 아 요즘 컴퓨터를 너무 많이 봐서 눈이 안 보이나 시력 떨어지는 속도가 너무 빠른데? 이러면서 안경 끼고 다시 본다.
[큐티뽀짝, 한 입에 쏙 추억의 콜팝 (콜라, 치킨무 미제공) 12,500원]
애석하게도 시력의 문제는 아니었고, 세상의 문제였다. 당장 언니한테 문자 보냈다.
언니 BHC에서 콜팝을 팔아!!
뭐지뭐지 왜 우리가 갔을 땐 없었지
근데 XX 가격이 만 이천 오백 원이고 콜라는 미제공이래 그게 콜팝이 맞아?
네???ㅇ뭐? 엥 XX 그건 그냥 XX 치킨너겟 쪼가리잖아 나 틀딱됐네
아니 검머외가 틀딱 같은 단어는 왜 아는 거야????? 인터넷 좀 작작 해
[틀딱]
기성세대에 속해있으며 구시대적인 발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거나 시대에 순응하지 못하고 과거에 머무르고 있는 인물이나 집단 전체에 광범위하게 쓰이는 멸칭.*
- 우리만 빼고 다들 너무 속도가 빠르지
허파 차가워질 때까지 경찰과 도둑 하다가 분식집 가서 콜팝 사 먹던 시절로부터 십오 년이 지났다. 강동구와 분당구는 뉴욕시와 분당구가 됐고, 이제는 문자알이라는 개념이 세상에서 사라졌다. 식당에서는 메뉴판 대신 각 테이블에 키오스크가 있고 치킨집에서는 콜팝을 안 판다. 아니, 파는데 콜라 미제공이다.
나는 연역법을 사용해 머리를 굴린다. 2020년대에는 문자알이라는 개념이 없다 → 2020년대의 학생들은 문자알이 뭔지 모른다 → 2020년대의 학생들은 “엄마 나 진짜 말도 잘 듣고 시험 잘 볼 테니까 문자알 쫌만 충전해 주면 안 될까?” 같은 말을 해본 적이 없다. 아니 잠깐. 그렇다면 그들은 500원짜리를 주웠을 때, 앗싸 내일 먹을 콜팝에 맛감자 추가할 수 있겠다! 이런 생각도 안 한다는 거잖아?
물론 그들도 각자의 이유로 부모(를 비롯한 양육자)에게 손이 발이 되도록 싹싹 빈 적이 있을 것이다. 말 잘 듣고 시험 잘 보겠다는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하며 빌어보는 것. 그것이 피양육자가 양육자에게 할 수 있는 떼쓰기 패시브 스킬 아닌가? 다만 그 이유가 문자알이 아닐 뿐이다. 콜팝도 똑같다. 그들도 500원 주우면 기쁘겠지. 그 이유가 콜팝이 아닐 뿐이다. 감히 예측해 보자면 뭐 내일 먹을 마라탕에 분모자 한 줄 추가 가능하겠다 뭐 이런 생각을 할… 까? 애초에 요즘 애들이 아직도 마라탕을 좋아하나? 요즘 애들 유행이 얼마나 빠른데.
그 순간 뭐가 생각났냐면, “엥 2000년에도 사람이 태어났어?!” 같은 말을 하는 어른들의 마음. “나 틀딱됐네.” 라고 하던 언니의 기분. 그런 것들에 괜히 마음이 간다. 꼰대로 규정되는 이들에 대한 어떤 연민이 뒤를 쫓는다. 오늘의 이 호들갑이 나를 거대한 꼰대의 길로, 거대한 라떼는 말이야의 길로, 거대한 틀딱의 길로 이끄는 첫 관문이구나.
우리는 그대로인데 우리만 빼고 다 너무 속도가 빠르지.
나는 그대로다. 내가 ‘우리’로 규정하는 이들의 다양성 또한 십 년 전과 별다르지 않다.
그래서 ‘우리’의 속도도 그대로다.
- 내일은 내 생일이에요
생일 하루 전날의 새벽 한 시. 내 속도, 이대로도 괜찮은가요?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 보기에 딱 알맞은 때다. 이제 나는 맞춤법 검사기를 돌리고 총괄에게 이 문서를 전달하고 침대에 누울 예정이다. 카카오톡 선물하기 위시리스트를 몇 개 설정해 둔 다음 휴대폰을 내려놓고 생각을 시작해야만 한다.
‘우리’의 기준을 어떻게 확장시킬 것인가.
내가 ‘우리’로 규정하는 이들의 세대가 더 다양해져야만, 이 호들갑을 멈출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그냥 그렇다. 요즘 애들과 나를 분리하는 것을 멈춘다. 기성세대와 나를 분리하는 것도 멈춘다.
그래야만, 타인들의 속도를 존중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틀딱의 정의 부분은 나무위키를 참고하여 재구성했다. 아무리 내가 대충 살아도 웹진에 나무위키를 참고하는 행위는 정말 피하고 싶었으나 틀딱 같은 단어가 등재된 국어사전은 없더라고. 나의 총괄님, 나의 동료 필진 여러분, 나의 독자 여러분. 나의 우리들에게 심심한 이해와 공감을 구걸해 봅니다. 하하!

신소영
rubysnow@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