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이보그는 교학에 다녀요

*사진: UnsplashLukas Kyzur

*영화 「싸이보그지만 괜찮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0.5 : 엄마 왈, 학교는 놀러 가냐

 학교 시절을 회고해 본다. “학교는 놀러 가냐?” 성적이 떨어지면 꼭 이런 말을 들었다. 성적이 어떻든 나는 급식 잘 먹고 잘 놀다 집에 왔다. 어머니는 그런 나를 보고 늘 답답해하셨는데, 사실 나는 이 말을 들으면 정말로 할 말이 없었다. 왜냐하면 진짜로 놀러 다녔으니까. 학교는 배울 학에 사귈 교를 쓴다. 엄마는 친구 사귀는 것보다 배움이 먼저라서 교학이 아니라 학교라고 부르는 거랬다. 그렇다면 내가 다니는 곳은 학교가 아니라 교학이라고, 아주 어렸을 때부터 생각했다.

 교학은 꽤나 즐거운 곳이었다. 스스로 할 일을 찾지 않아도 시간표가 짜여 나온다. 정해진 시간에 밥을 먹는다. 뭘 먹을지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수업을 듣고 싶은 사람은 듣고, 자고 싶은 사람은 잔다. 앉아 있기만 하면 시간이 흐르는 곳. 모든 것이 선택인 나의 교학. 그래도 매일 아침 여섯 시에 일어날 만큼 가치 있는 일이었냐고 묻는다면, 나는 아직도 고개를 끄덕이지 못한다. 너무도 즐거운 교학의 의자에 앉아 늘 고민했다. 우리는 왜 여기에 모여 있을까.

 학교에 왜 가야 하는지 어른들께 여쭙던 시절이 있었다. 돌아온 대답은 늘 “가야 하니까.” 그런 건 내게 대답이 된 적이 없다. 왜 해야 하냐고 묻는데 대답이 해야 하니까라니. 그건 먹고 자는 일에나 어울리는 대답이다. 사람은 안 먹으면 죽는다. 안 자도 죽는다. “해야 하니까”라는 대답은, 왜 먹고 왜 자야 하냐는 질문에나 어울리는 대답일 테다.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는 일은 고되고, 매년 40명의 반 친구를 새로 사귀는 일은 즐겁지만 부담스럽다. 수업도 대체로 재밌다. 다만 죽어도 싫은 과목이 있다. 즐거움만큼 고통이 교학에, 학교에 있다.

 학교는 뭘 하는 곳일까. 왜 우리는 여기에 매일 올까. 학교는 무엇을 가르치는 곳일까.

1 : 담임 왈, 너 같은 애 처음 봐

 고등학교 때 들었던 말이 아직도 내게 남아있다. 교사 생활 20년 넘게 했는데 너 같은 애 처음 봐. 너 OO대 안 갈 거야?! 우리 반 평균은!!

 아마 내가 뭘 제출하지 않은 탓이었나. 시험은 잘 봐 놓고 수행평가를 제출하지 않아서 그러셨던 것 같다. 처음부터 화를 내신 건 아니었다. 나를 따로 불러 몇 번이고 수행을 제출하라고 하셨다. 감상문을 내는 과제였던 것 같은데, 뭐라도 써서 내라고 하셔도 나는 끝내 제출하지 않았다. 아무 감상이 없었으니까. 그때의 나는 조금 뻣뻣한 학생이었어서, 쓸 말이 한마디도 없으면 안 냈다. 아니, 못 냈다.

 그곳은 자주 교학이었다가, 순식간에 학교가 되곤 했다. 모든 것이 선택일 때는 교학이다. 그러다 제출과 평가를 강요당하는 순간 공간은 학교로 그 의미를 바꾼다. 생각이 있든 없든, 감상이 있든 없든 시험을 잘 본 학생은 뭐라도 써서 제출해야 했다. 선생님은 나를 OO대에 보내고 싶어 했으니까. 나는 시험을 잘 봤기 때문에, 수행평가에서도 높은 점수를 받아 반평균을 올리는 데 기여해야 했으니까.

 학교는 뭐 하는 곳일까. 우리는 왜 여기에 매일 올까.

2 : 싸이보그여도 괜찮… 나?

 영화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는 자신이 인간이 아니라 싸이보그라고 믿는 영군의 이야기다. 배경은 크게 두 곳이다. 라디오 공장과 정신병동.

 공장에서는 정해진 속도로, 명령에 따라 일을 수행한다. 일률적인 풍경 속, 식사를 하지 않는 영군은 단연 눈에 띈다. 식사를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자신이 인간이 아니라 싸이보그라는 것을 깨달아버렸기 때문에. 인간의 에너지원은 쌀밥이지만, 싸이보그는 전기를 필요로 한다. 밥이 들어가면 고장이 나버린다. 영군은 건전지를 핥고 기계와 이야기하더니, 급기야는 손목을 자른다.

 그렇게 기절하고 정신병동에 입원하게 된 영군. 병원은 그를 거식증으로 진단하고 식사할 수 있도록 치료한다. 처음에는 밥을 먹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알려준다. 먹어보자고 달랜다. 그래도 거절하니, 나중에는 치료를 위해 전기충격을 가하고, 코에 호스를 꽂아 영양을 강제로 주입한다. 누구도 영군이 왜 식사를 거부하는지 관심 가지지 않는다. 그저 밥을 먹게 만들어, 세상이라는 구조에서 옳게 기능하도록 만들면 그만이다. 고장 난 인간을 고치면 그걸로 충분하다. 모두가 영군의 기능적 회복을 바라지만, 영군에게는 몹시 외로운 정신병동. 학교는 아이들을 세상에 적응시키는 기능을 한다고 주장하는 자들을 보아 왔다. 그런 설명이 맞다면, 학교는 아마 “싸이보그가 되지 않는 편이 더 좋은 곳”에 가까울 것이다.

 영군의 이야기를 마저 해보자. 결국 영군은 식사를 통해 충전하는 방법을 배운다. 같은 병동에 있던 ‘일순’의 이해가 가능케 했다. 일순은 영군의 등에 ‘라이스 메가트론’이라는 장치를 심어 준다. 이름부터 황당한 이 장치는 쌀을 전기 에너지로 변환시키는 기능을 한다(고 일순은 설명한다). 일순이 선물한 기계는, 밥을 먹어도 고장 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인 셈이다. 그 황당한 기계가 영군을 비로소 안심시키고, 마침내 안전하다 여기게 만든다. 다음날 곧바로 식사하는 영군, 환자와 관계자들은 환호한다.

 세상은 외로운 공간이다. 모두가 같은 속도로 움직이는 곳에서 혼자 다른 방식으로 작동해야 하니, 싸이보그는 되지 않는 편이 아무래도 좋다. 영화 속 영군의 어머니가 “싸이보그여도 괜찮아. 남들 모르게만 하면 돼.”라고 말했던가. 그래, 세상은 싸이보그여도 괜찮다. 살아갈 수 있다. 다만 남들 모르게 싸이보그여야 한다. 

3 :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선생님께서는 20년이나 교단에 서계셨다. 그럼에도 나 같은 학생은 처음 본다고 말씀하셨지. 그렇다면 나는 아마도 싸이보그였던 것 같다. 남들 모르게 하는 데 실패한 싸이보그. 그럼에도 내게 그 공간은 학교가 아니라 교학으로 남아있다. 여섯 시에 일어날 가치가 없어도, 감상이 없어도 감상문은 제출해야 했어도. 그래도 내게 교학이다.

 학교를 교학으로 바꾸는 존재들이 있었기에, 나는 싸이보그여도 괜찮았다. 일순같은 사람들. 어떤 혼란 앞에 선 내게, 나만의 답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말하며 기다려 준 이들이 분명 거기에 있었다. 그들의 마법이 학교를 교학으로 바꾼다. 나의 일순들이, 영화 속 일순처럼 내게 명쾌한 해결책을 가져다준 것은 아니다. 다만 헷갈려도 괜찮다고, 싸이보그여도 괜찮다고 말해주었다. 그 신뢰와 지지는 내 혼란을 안전함으로 바꾸는 라이스 메가트론이었다.

 학교는 왜 가야 할까. 아무래도, 각자의 일순을 만나기 위해 가는 것 같다. 더 이상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되는 스물일곱의 3월, 그런 생각을 해본다.

신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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